1955년11월3일,하북 당산에서 전국 제1차 양주공업 대회가 열렸다. 대회의 연구와 토론에 대비하여 진행된 전국성 바이주 평비에서 쌍구 술공장이 출품한 64도 쌍구 고량따취가 엄격한 시음, 채점, 레벨 확정 등 과정을 거쳐 최고점수로 전국 갑급 우승을 따냈다.1955영예 기념비는 숫자 1 셋을 줄 세운 형태로서 세 개의 1은 각기 제1차 양주 공업대회, 갑급 우승을 의미한다. 기념비의 술 단지 모형은 모두 갑(甲)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기념비는 갑급 우승의 영예를 기념하고저 세운 것이다.
쌍구1955기념원-장랑
이 조각은 전통 수제 양주팀이 양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생산조건이 아주 낙후하여 인공으로 누룩을 밟고 당나귀로 맷돌을 갈았고 흙부뚜막을 사용하여 가마를 가열했고 시루에서 찌는 과정이 끝나면 나무 부삽으로 저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사장은 오른손에 기름 등잔불을 들고 왼손에 꽃잔을 들고있다 꽃잔으로 술을 받으면서 알코올 농도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술을 받을 때 주화(酒花) 가 크면 알코올 농도가 높고 주화가 작으면 알코올 농도가 낮다고 판단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여기 세 분은 지금 시루에서 나온 탁주를 저으면서 미음을 더 부어 넣는 작업을 하고있는 중이다. 술공장에서 초기에사용했던 양주 도구들은 전승의 의미가 깊이 깃들어 있으며 시대 변천과 문명 진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것은 초기에 주방(酒坊)에서 탁주를 날랐던 나무로 만든 일륜차이다. 50년대초기에는 두 명의 노동자가 탁주를 광주리에 담아서 대나무 맬대나 굵은 막대기로 날랐다. 지금은 천정 크레인으로 손수레를 대체하였다.
1955년부터 1989년, 이 기간에 열린 5차례의 국가급 평주대회에서 쌍구다취가 5차례 모두 랭킹에 올랐다.
1955년, 쌍구다취가 전국 갑급 우승을 따내 쌍구 술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1963년, 북경에서 열린 제2차 평주 대회에서 쌍구다취가 전국 고품질술 우승을 따냈다.
1979년, 대련에서 열린 제3차 평주대회에서 39도 쌍구특액이 국가 고품질술 은상을 수여 받아 중국 저알콜도 바이주 발전의선하를 열었다. 쌍구다취는 <국가우수> 칭호를 확보하였으나 18대 명주의 선발에서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1984년, 제4차 전국 평주 대회에서 쌍구다취가 국가 명주로 선발되였다. 당시 90세 고령이였던 엽성도(叶圣陶)선생님은 병석에서도 변함 없이 회사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셨다
회사의 직원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저 쌍구다취 두 병을 엽 선생님께 선물하였다. 엽 선생님은 평소에 술을 거의 안드시지만쌍구다취를 보고 반가워 즉석에서 시를 지어 읊으셨다.
<예전에 맛본 쌍구술 >
지금은 다 늙은 몸이라 마시고 싶어도 생각 뿐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 맛 잊을 수가 없구나
그야말로 틀림 없는 천하 미주로다
쌍구1955기념원-인물조각
노일대 공예전승 인물들을 명기하고저 인물조각을 만들었다. 오른쪽으로터 시작하여 기술방면 책임자 부공장장 쉬화이, 양주사장 대표인물 쉬펑로우, 리자오츈이다. 쉬화이는 양주기술 방면의 책임자이고 부공장장으로서 현, 지방과 성 관련부문의선발과 추천으로 강소성을 대표하여1955년 전국 제1차 양주회의에 참석하였으며 전국 평주위원의 신분으로 중화인민 공화국의 첫 전국성 평주에도 한 몫 하였다.
양주사장 쉬펑로우는 무연 석탄에 소금을 넣는 방법으로 불길을 더 세게 하였다. 이렇게 빚어낸 술은 산량이 높고 품질이 좋았다. 쉬펑러우는 1959년에 전국 노동 모범칭호를 수여 받았으며 북경에서 열린 전국 우수 노동자 대회에 참석하여 유소기부주석과 주은래 총리의 접견을 받았다.
리쟈오춘은 쌍구술 공장의 공예전통을 이어받고 발전시킨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전에 이미 전덕조방의 사장으로 활약하였으며 쌍구술 공장과 합병한 후 그는 전통 양주공예를 더욱더 발전시켰다. 그 후의 10년, 20년 리쟈오춘은 기술자의 리더로서 쌍구 양주기술이 성숙되고 진보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전통공예를 이어 받고 발전시킨 사장은 리씨 외에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기술이 뛰어나고 품질이 우수하며 직장을 사랑하고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분들이였다. 이들은 쌍구 술공장의 소중한 보배들이다. 쌍구다취의 양조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쌍구 술공장을 지고 나아갈 기술이 뛰어난 제자들도 육성하였다.
쌍구1955기념원-새공장 감천정
예로부터 <명주 산지에는 꼭 좋은 샘이 있다>는 말이 있다. 이태백은 <하늘이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늘에 주성이 있을리없고 땅이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 천하에 주천이 있을리 없어라> 라고 했다. 쌍구는 천년의 양주역사를 가진 고장으로서 천지의 혜택을 받아 신공장구의 동구샘과 옛 공장구의 서구샘 두 샘터가 있다. 이 두 샘터에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명나라 만력연간에 쌍국진에는 주방이 두 집 있었다. 한 집은 동구샘의 물로 술을 만들어 동구다취라고 불렀고 한 집은 서구샘의 물로 술을 만들어 서구다취라고 불렀다. 두 집은 자연스럽게 경쟁하는 사이가 되였다. 그러나 어느 날 동구 주방의 따님과서구 주방의 아드님이 눈이 맞아 사랑에 빠져버렸다. 두 사람은 여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집의 가장들은 결사 반대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라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가 없었다. 두 집은 결국 사돈을 맺었으며 두 주방의 연합을 선고하였다.두 집 모두 술 만드는 방면에 경험이 풍부하고 동서 두 샘터의 좋은 물을 사용하여 예전보다 더욱 고품질의 술을 만들어 냈으며 쌍구다취라고 명명하였다. 쌍구다취는 그 후로 세상에 이름을 떨쳤으며 그 영향력은 오늘도 여전하다.